[판례해석] 살인 피해자 유족 동의 없이 영화 제작과 상영이 가능할까? -암수살인 영화 상영금지가처분 사건을 중심으로

기사입력 2019.02.1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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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재기 변호사]


[정치닷컴/휴먼리더스=편집국]

최근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암수살인’영화 상영을 앞두고 피해자(사망)의 유족이 제기한 ‘영화상영금지가처분신청’ 사건이 언론을 뜨겁게 달군 바 있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암수살인에 나오는 장면들이 고인이 된 피해자를 직접적이고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지금껏 단 한 번도 유족들의 동의나 협의가 없었다며 영화상영을 금지해달라는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것이다.

 

배급사인 주식회사 쇼박스는 ‘피해자 유족의 동의가 없었음을 사과한다’며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피해자 살인방법 묘사 등 실제와 동일하게 묘사된 장면에 있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인지 언급이 전혀 없어 대중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영화상영금지가처분’이란, 만약 그대로 영화가 상영되거나 배급되면 신청인에게 되돌릴 수 없는 권리침해가 예상될 때, 그 영화 자체의 상영을 임시적으로 막는 재판을 의미한다. 가처분 신청사건은 임시조치(가처분)를 하지 않으면 신청인(피해자 유족)에게 발생될 중대한 손해와 가처분을 인용했을 때 피신청인(영화 배급사)에게 발생될 손해 등을 비교형량하여 결정하게 된다.

 

영화 가처분 신청사건의 특징은 피신청인이 될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 등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생명, 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손해를 야기할 정도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한 자유민주주의 기본 토대가 되기 때문에 보다 널리, 광범위하게 보장하는 법적 체계를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화, 출판물 또는 방송에 대한 가처분신청 사건은 인용되기보다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제한을 하기 보다는 가처분 신청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결론짓는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재판의 관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는 실존 인물과 그 유족의 ‘인격권’ 침해문제가 전면적으로 문제된다. 법원은“실존 인물과 사건이 작품 속에서 완전한 허구로서 승화되어 그 작품 속에서 실존 인물의 존재를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실존 인물의 인격적 법익이 침해될 여지가 없다 하겠으나, 관객의 입장에서 허구임을 인식할 수 있어도 완전히 허구로 승화되지 못하여 그 표현 안에서 실존 인물의 존재가 느껴질 때에는, 아무리 합리적인 독자나 관객의 입장에서 보아 극 중 허구와 진실을 혼동할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라 하여도, 허구의 표현 자체가 실존 인물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 표현으로 인해 실존 인물과 그 유족의 인격적 법익이 침해될 수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6. 8. 10. 선고 2005가합16572 판결)고 판시하고 있는데, 실제 사건을 허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였다고 하더라도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실제 사건인 것처럼 허구와 진실을 혼동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유족의 인격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유족 등 ‘인격권자’의 동의나 협의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격권이 침해되더라도 영화 자체의 상영을 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중대한 법적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 질 수밖에 없고, 현 판결의 태도에 비춰 인용될 가능성도 높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영화 상영 전 가처분이 신청된 사례를 보면, 영화 ‘그놈목소리’영화에서, 실제 사건의 유괴범과 실제로 통화한‘계모’의 목소리를 영화에 삽입한 것에 대하여 법원은 “신청인의 실제 음성을 사용하는 것까지 동의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육성을 삭제하거나 변조하지 아니한 상태로 DVD 등을 발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 영화에서는 ‘계모’의 실제 목소리를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그 계모가 동의하였다고 볼 수 없고, 그 목소리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을 인용하더라도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는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영화 ‘그때 그 사람’영화에서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원에 영화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을 한 바 있는데, 법원이 일부 영상의 삭제를 조건으로 영화를 상영할 것을 명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것도 영화가 그대로 상영할 경우 영화 속 인물에 대한 묘사로 인해 망인과 유족의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그 사람들’영화는 나중에 가처분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으로 가처분인용결정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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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실제 사건이나 실제 인물을 영화화 할 때는 인격권자의 동의나 협의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러한 절차 없이 영화화를 강행할 경우 인격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대중적 파급력이 막대하고, 영화 속 인물 묘사에 대하여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영화 제작 전 인격권자에 대한 동의 절차는 법적인 분쟁을 피하는 길이다. 이 사건에서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제작사는 실제 사건의 영화화를 위해 5년 이상 발로 뛰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유족과 영화 제작에 관한 협의나 동의절차를 진행한 바 없었다고 하므로 유족의 동의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러한 영화가 미국에서 제작되었고, 미국 법원에 소가 제기되었다면, 제작사와 배급사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몇 백 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고,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인용률이 낮았기 때문에 영화 관련자들이 유족의 동의를 필수적 법적 절차로 인식하지 않았고, 그러한 제작관행도 없었다고 보인다.

 

이번 기회를 통해 영화 제작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유족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는 제작관행이 확고히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다.

[편집국 기자 infoj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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