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이별] 달뜨면 내가 보고 있는 줄 아시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기사입력 2019.02.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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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닷컴=김규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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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김일성에 의한 남침전쟁으로 ‘열흘 정도 훈련만 하고 바로 보내주겠다’는 말에 끌려간 남편은 북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그것도 결혼한 지 여섯 달 만에 졸지에 닥친 일이라 신랑이 야속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평생을 생과부로 살면서 그래도 견뎌낸 것은 신랑이 돌아오리라는 믿음 하나였으리라.


신혼집에 홀로 남겨진 새색시는 제 아비 얼굴도 모르는 아들을 둘러업고 삯바느질에 농사일에 가릴 게 없이 한 많은 65년 세월을 보내며 박복한 자신의 처지를 전생의 업(業)이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두 눈뜨고 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람 인연이었기에 때로는 지친 기다림에 산사람 놓고 제사도 지내봤지만 구멍 숭숭 뚫린 가슴은 메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드디어 6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살아있으며 만난다는 소식에 열아홉 결혼하던 날 보다 더 가슴이 콩닥거렸다는데 선심 쓰듯이 만들어준 2박 3일은 짧기만 했다. 여기저기 눈치 보면서 같이 한 대여섯 시간이 어쩌면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낮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야속한 시간은 쏜살같기만 했다. 다시 헤어지기 전, 질긴 인연의 세월을 거꾸로 돌리고 싶었는지 두 사람 이름 박은 시계 하나 신랑 손목에 채운다.


원수같이 더디기만 하던 세월이 요 며칠 게눈 감추듯이 휑하니 가버리고 이제 헤어지면 다시 볼 기약 없다고 생각한 팔순의 새색시, 울음 삼키며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한참을 망설이던 팔순 신랑, ‘달뜨면 내가 보고 있는 줄 아시게’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서두르라는 안내원의 호통에 차에 오르기도 버거운 신랑을 바라보는 새댁, 푹 꺼진 가슴 더 내려앉아 망연자실 죄 없는 땅바닥만 두들겨 대고 있었다.

[김규남 논설위원 기자 infoj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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